생리전증후군(PMS)
월경 전 반복되는 예민함과 감정 변화는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월경 주기에 따른 호르몬 변화에 신경계가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나타나는 생리전 증후군(PMS)의 한 모습일 수 있습니다.
회계법인에 다니는 30대 여성 C씨는 지난달 남편과 크게 다퉜습니다. 발단은 별것 아니었습니다. 설거지가 쌓여 있는 것을 보자 갑자기 화가 치밀었고, 평소라면 그냥 넘어갔을 말 한마디에도 언성이 높아졌습니다.
다투고 나서 방에 혼자 앉아 있던 C씨는 문득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화가 났지?”
돌아보면 이런 날이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은 사소한 지적에도 눈물이 났고, 어느 날은 가슴이 팽팽하게 당기고 아랫배가 부은 느낌 때문에 하루 종일 예민했습니다. 유난히 피곤하고 처지는 날도 있었습니다.
남편도 최근 들어 몇 번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요즘 유독 날이 서 있는 것 같아.”
그 말이 서운하면서도 C씨 자신도 이유를 몰라 답답했습니다. 원래 내가 이런 성격이었나, 요즘 회사 일이 힘들어서 그런가 생각해봤지만 뚜렷한 이유를 찾기는 어려웠습니다.
한의원에서 문진하며 먼저 짚어본 것은 증상이 언제 심해지고 언제 괜찮아지는지였습니다.
최근 두 달을 되짚어보자 한 가지 패턴이 보였습니다.
증상은 주로 배란 이후부터 심해졌고, 월경이 시작되면 며칠 안에 가라앉았습니다. 월경이 끝난 뒤부터 다음 배란 전까지는 비교적 편안했습니다.
이처럼 월경 전에 신체적·정서적 증상이 반복적으로 나타났다가 월경이 시작되면서 호전되는 상태를 월경전증후군 혹은 생리전증후군(PMS)이라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증상의 종류만으로 PMS를 판단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예민함, 우울감, 피로, 복부 팽만, 유방 불편감 같은 증상은 다른 상황에서도 얼마든지 생길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적어도 두 번의 월경 주기 동안 증상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시점을 직접 기록하면서 월경 주기와 일정한 관계를 보이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분당서울대병원에서 가임기 여성 200명을 조사한 국내 연구에서는 8%가 연구에서 사용한 PMS 진단 기준을 충족했습니다. 국외 문헌에서는 여성의 약 5~8%가 일상생활에 상당한 지장을 줄 정도의 심한 월경전 증상을 경험하는 것으로 보고됐습니다.
진단 기준과 조사 방법에 따라 유병률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 연구에서 눈에 띄는 결과가 하나 있습니다.
PMS로 진단된 여성 가운데 43.8%는 치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의료기관을 찾은 경우는 12.5%에 그쳤습니다.[1]
C씨 역시 비슷했습니다. 병명을 몰랐다기보다 ‘이 정도는 원래 참고 지나가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PMS의 원인을 설명할 때 흔히 여성호르몬부터 떠올립니다.
그런데 PMS가 있는 여성에게 에스트로겐이나 프로게스테론이 항상 비정상적으로 높거나 낮은 것은 아닙니다. PMS가 있는 여성과 그렇지 않은 여성의 호르몬 수치를 비교해도 일관된 차이가 확인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호르몬의 양 자체보다 월경 주기에 따른 정상적인 호르몬 변화에 뇌와 신경계가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주목합니다.
이 과정에서 대표적으로 연구되는 물질이 ‘알로프레그나놀론(allopregnanolone)’입니다.
프로게스테론에서 만들어지는 신경활성 스테로이드로, 뇌의 GABA-A 수용체에 작용해 신경계의 흥분을 조절합니다. 배란 이후 황체기에는 프로게스테론과 함께 이 물질의 농도도 변화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에 대한 신경계의 반응이 사람마다 같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PMDD 연구에서는 알로프레그나놀론의 절대적인 양보다는 주기적인 변화에 대한 비정상적인 민감성이 증상 발생에 관여할 가능성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같은 월경 주기를 겪더라도 어떤 사람은 별다른 불편이 없는 반면, 어떤 사람은 그 시기에 감정과 신체 증상이 크게 흔들릴 수 있습니다.
이러한 특성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치료 연구도 있습니다.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는 우울장애에서는 일반적으로 일정 기간 지속적으로 복용해야 효과를 판단합니다.
그런데 PMS, 특히 PMDD(월경전불쾌장애)에서는 배란 이후 황체기에만 간헐적으로 복용하는 방법도 효과가 있다는 연구가 축적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빠른 반응은 PMS, PMDD의 기전이 일반적인 우울장애와 완전히 같지 않을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세로토닌계뿐 아니라 신경활성 스테로이드와 GABA-A 수용체의 반응 변화 등 여러 기전이 함께 연구되고 있습니다.
진료실에서 이 설명을 들은 C씨가 잠시 생각하다 되물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원래 예민한 사람이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거네요?”
그렇습니다. 중요한 것은 ‘성격이 예민하다’고 결론짓기 전에 증상이 특정한 시기에 반복되는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물론 월경 전에 나타나는 증상을 모두 PMS로 볼 수는 없습니다.
갑상선 기능 이상이나 우울장애·불안장애가 비슷한 증상을 만들 수 있고, 기존에 있던 정신적·신체적 증상이 월경 전에 더 심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완경 이행기에도 호르몬 변동과 함께 감정이나 수면의 변화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단서가 다시 주기성입니다.
PMS에서는 월경 전 특정 시기에 증상이 반복되고 월경이 시작된 이후 호전되며, 월경 후에는 증상이 거의 없는 기간이 확인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반대로 한 달 내내 비슷한 증상이 이어지면서 월경 전에 더 심해지는 정도라면 기존 질환의 월경 전 악화는 아닌지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의학에서는 월경 전의 예민함과 가슴 답답함, 유방의 팽팽한 느낌, 복부 불편감 등이 함께 나타날 때 간기울결(肝氣鬱結) 상태를 원인으로 고려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간(肝)은 현대의학에서 말하는 간이라는 장기와 완전히 일치하는 의미는 아닙니다.
한의학에서는 기의 흐름을 원활하게 조절하는 기능을 소설(疏泄)이라고 하는데, 이 기능을 간이 조절하고 이러한 흐름이 원활하지 않을 때 답답함이나 창만감, 감정 변화, 월경과 관련된 여러 증상이 함께 나타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PMS가 있다고 해서 모두 간기울결로 진단하는 것은 아닙니다.
같은 월경 전 예민함이라도 어떤 사람은 답답함과 짜증, 팽만감이 두드러지고, 어떤 사람은 쉽게 지치면서 기분이 가라앉거나 어지럼증과 수면 문제가 함께 나타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월경 주기에 따른 증상의 변화뿐 아니라 평소의 소화와 수면, 피로, 정서 변화, 통증과 월경 양상 등을 함께 살펴 진단하고 치료 방향을 정합니다.
침·뜸·약침·한약 등의 치료 역시 이러한 진단을 바탕으로 환자의 상태에 맞게 구성합니다.
C씨에게 먼저 권한 것은 자신의 증상을 주기에 맞춰 기록해보는 것이었습니다.
언제부터 예민해지는지, 우울감이나 불안은 어느 정도인지, 잠과 피로는 어떻게 달라지는지, 신체 증상은 월경이 시작된 뒤 언제 가라앉는지를 적어보도록 했습니다.
필요에 따라 심리치료를 함께 고려할 수도 있습니다. 인지행동치료를 비롯한 심리적 개입이 월경전 증상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가능성을 보여준 연구들도 있습니다. 한의학적 정신요법, 명상과 기공 등도 병행 가능합니다.
무엇보다 월경 전마다 반복되는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 변화에 대해서 그저 ‘내 성격이 원래 이런가 보다’라고 받아들이지 않으셔야 합니다.
증상이 일정한 시기에 나타났다 사라진다면, 먼저 그 패턴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전에는 그냥 제가 예민한 사람인 줄 알았어요.”
진료실을 나서며 C씨가 남긴 말입니다.
이 글에 등장하는 사례는 실제 인물을 특정하지 않기 위해 각색한 가상의 사례입니다. 월경 전 신체적/정서적 변화가 반복되면서 일상생활이나 대인관계에 영향을 주고 있다면, 증상이 나타나는 시기와 양상을 기록해 진료 시 함께 확인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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