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통
편두통이 있을 때 복통이나 메스꺼움 같은 소화기 증상이 함께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뇌와 장이 서로 신호를 주고받는 ‘장-뇌 축’을 중심으로 장 장벽, 장내미생물, 과민성대장증후군과 편두통의 관계를 알기 쉽게 살펴봅니다.
D씨는 마감을 앞두고 있을 때면 두 가지 증상을 함께 겪곤 했습니다. 한쪽 관자놀이가 욱신거리기 시작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배가 아프면서 화장실을 자주 찾았습니다. 어떤 날은 배가 먼저 아팠고, 어떤 날은 두통이 먼저였습니다.
“둘이 따로 오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비슷한 시기에 꼭 같이 오니까 서로 관련이 있나 싶더라고요.”
두통이 심할 때는 속이 메스껍고 밝은 빛을 보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반복되는 복통 때문에 위내시경과 대장내시경도 받아봤지만 특별한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머리가 아플 때 배도 함께 불편해지는 것은 단순한 우연일까요.
최근에는 이러한 현상을 ‘뇌-장 축(gut-brain axis)’이라는 관점에서 연구하고 있습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배가 아프거나 화장실을 자주 찾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대로 배가 계속 불편하면 잠을 잘 이루지 못하거나 예민해지기도 합니다.
이것은 뇌와 장이 서로 완전히 독립된 기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뇌와 장 사이에는 자율신경계와 장신경계, 미주신경, 면역계, 호르몬 등이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최근에는 여기에 장내미생물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편두통 역시 이러한 뇌와 장의 관계를 살펴볼 수 있는 질환입니다. 편두통이 심할 때 메스꺼움이나 구토 같은 소화기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흔하고, 과민성대장증후군과 편두통이 함께 나타나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장 안에는 음식물뿐 아니라 수많은 세균과 여러 물질이 존재합니다. 그렇다고 이 물질들이 모두 자유롭게 우리 몸속으로 들어오는 것은 아닙니다. 장 점막을 이루는 세포들이 촘촘하게 연결되어 장 장벽(intestinal barrier)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장벽은 필요한 영양소는 받아들이면서 불필요한 물질의 통과는 제한합니다.
이러한 장벽의 조절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진 물질 가운데 하나가 조눌린(zonulin)입니다.
조눌린은 장 점막 세포 사이의 결합과 장의 투과성을 조절하는 데 관여하는 단백질입니다. 그래서 연구에서는 장 장벽에 변화가 있는지를 간접적으로 살펴보기 위한 지표로 이용되기도 합니다. 2025년 발표된 한 연구에서는 편두통 환자의 혈액에서 측정한 조눌린 수치가 건강한 사람보다 높게 나타났습니다.
그렇다고 조눌린 수치가 높으면 편두통이 생긴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실제로 이 연구에서도 조눌린 수치와 두통의 빈도나 강도 사이에 뚜렷한 관계가 확인되지는 않았습니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편두통 환자의 일부에서 장 장벽을 조절하는 과정에도 변화가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라는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장 안에 살고 있는 수많은 미생물도 연구 대상입니다.
최근 연구들을 종합해보면 편두통 환자와 건강한 사람 사이에서 장내미생물 구성의 차이가 관찰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균이 많으면 편두통이 생긴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특정한 장내미생물의 유형이 밝혀진 것은 아닙니다. 사람마다 식습관과 생활환경, 복용하는 약 등이 다르기 때문에 연구 결과에도 차이가 큽니다.
프로바이오틱스를 이용해 장내 환경을 변화시키려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일부 최근 연구에서는 편두통의 빈도가 줄어드는 결과가 나타났지만, 아직 연구 수가 적고 사용된 균주와 복용 기간도 제각각입니다. 따라서 현재 단계에서 특정 유산균을 편두통의 일반적인 치료법으로 권하기에는 근거가 충분하지 않습니다.
뇌와 장의 관계를 비교적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편두통과 과민성대장증후군(IBS)의 동반입니다.
2023년 여러 연구를 종합한 결과, IBS가 있는 사람에게 편두통이나 두통이 함께 나타날 오즈는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약 2.1배 높았습니다. 반대로 편두통 환자에게 IBS가 동반될 오즈(odds) 역시 약 2.5배 높았습니다.
여기서 오즈가 2배라는 것은 질환이 생길 확률이 정확히 2배라는 뜻은 아닙니다. 두 질환이 일반적인 경우보다 서로 더 자주 함께 나타나는지를 비교한 통계적인 수치로 이해하면 됩니다.
왜 두 질환이 함께 나타나는지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장내미생물뿐 아니라 자율신경계, 면역 반응, 스트레스, 통증에 대한 신경계의 민감성 등이 함께 관여할 가능성이 연구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장이 나빠서 머리가 아프다’고 단순하게 설명하기보다는 뇌와 장의 기능을 조절하는 여러 체계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라고 이해하는 편이 좋습니다.
한의학에서도 오래전부터 일부 두통에서 소화기 증상을 함께 관찰해왔습니다.
《동의보감》 외형편 두문에는 담궐두통(痰厥頭痛)이라는 두통이 별도의 항목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는 두통과 함께 어지럼이 나타나고, 몸이 무거우며, 눈을 뜨기 힘들고, 구역질이 날 것 같은 증상 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동의보감》은 이 내용을 금원시대 의가인 이동원의 설명을 인용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한의학에서는 담음(痰飮)과 같은 병리적 상태가 두통이나 어지럼, 오심과 함께 나타날 수 있다고 보았고, 비위의 기능 역시 이러한 증상을 판단할 때 중요하게 살펴왔습니다.
다만, 한의학의 담음을 현대의 장내미생물이나 장 장벽의 변화와 같은 것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서로 다른 시대와 의학 체계에서 만들어진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현대의 뇌-장 축 연구가 두통을 뇌에서 일어나는 현상만으로 보지 않고 장과 신경계, 면역계의 관계까지 살펴보듯이, 한의학에서도 일부 두통을 평가할 때 두통만 보지 않고 소화 상태와 오심, 어지럼, 식사 등의 증상을 함께 살펴왔다는 점입니다.
D씨에게 마감 전 며칠의 생활을 물었습니다.
“거의 하루 종일 앉아서 그림만 그려요. 밥도 대충 먹거나 거르고요. 급하면 커피로 버티는 날도 많아요.”
수면 부족과 불규칙한 식사, 카페인 섭취의 변화, 스트레스는 편두통과 위장관 기능 모두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따라서 D씨의 증상을 장내미생물이나 장 장벽의 문제 하나로 설명하기보다는 두통과 복통이 언제 함께 나타나는지, 그 시기의 수면과 식사, 스트레스와 배변 상태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함께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현재의 뇌-장 축 연구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뇌와 장은 서로 떨어져 있지만 독립적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신경계와 면역계, 호르몬, 장내미생물 등 여러 경로를 통해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아직 어느 변화가 원인이고 어느 변화가 결과인지 밝혀지지 않은 부분도 많습니다.그렇기 때문에 뇌-장 축은 모든 두통을 설명하는 하나의 원인이라기보다, 두통과 소화기 증상이 왜 함께 나타날 수 있는지를 이해하는 하나의 관점으로 보는 것이 적절합니다.
이 글에 등장하는 사례는 실제 인물을 특정하지 않기 위해 구성한 가상의 사례입니다. 갑자기 발생한 매우 심한 두통이나 기존과 다른 양상의 두통, 신경학적 증상이 동반되는 두통은 우선 의학적인 평가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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