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증
수면검사에서는 꽤 긴 시간을 잤다고 나오는데도 본인은 한숨도 못 잤다고 느끼는 일이 있습니다. 이는 밤에도 뇌의 각성이 충분히 가라앉지 않으면 잠들어 있던 시간이 깨어 있던 시간으로 기억되기 때문입니다.
"이 검사, 뭔가 잘못된 것 같아요."
마흔아홉, 중학교 교사 A씨가 가져온 수면다원검사 결과지에는 그날 밤 총 수면시간이 6시간 12분으로 적혀 있었다.
A씨는 3년째 잠을 못 잔다고 했다. 누우면 새벽 네 시까지 말똥말똥하고, 겨우 눈을 붙였다 싶으면 알람이 울린다고 했다. 답답한 마음에 큰 병원까지 가서 수면검사를 받았다. 그런데 결과는 정상.
남편은 "검사에서 잘 잤다고 나왔는데 왜 자꾸 못 잤다고 해."라며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A씨도 스스로를 의심하고 있었다. 진료실에 앉자마자 이렇게 물었다.
"기계가 고장 난 걸까요, 제가 예민한 걸까요?"
이럴 때 환자분들께 보여드리는 연구가 하나 있다.
연구진은 잠에 아무 문제가 없는 젊은 성인 68명을 수면검사실에서 재웠다. 참여한 사람들의 평균 나이는 스물네 살이었다. 뇌파를 보면서 확실히 잠든 것을 확인한 뒤에 일부러 깨웠다. 얕은 잠에 해당하는 2단계 수면에서 깨우기도 했고, 꿈을 꾸는 렘수면에서 깨우기도 했다. 그리고 깨우기 직전에 자고 있었는지 깨어 있었는지를 물었다.
참여한 68명 중 48명(70.6%)은 자고 있었다고 답했다. 나머지 20명(29.4%)은 깨어 있었다고 답했다. 얕은 잠에서 깨운 사람들 가운데 깨어 있었다고 답한 비율은 38.2%였고, 렘수면에서 깨운 사람들 가운데서는 20.6%였다.
이게 무슨 뜻일까? 잠에 아무 문제가 없는 사람도 자기가 방금 자고 있었다는 사실을 모를 때가 있다는 뜻이다. 검사기계가 "이 사람은 잠들었다"고 판정하는 것과, 본인이 "내가 잠들었다"고 느끼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잠에 문제가 없는 사람들의 경우, 이러한 현상이 얕은 잠을 자는 잠깐 동안만 나타난다. 하지만, 불면증 환자는 밤새도록 자신이 깨어 있었다고 느낀다.
불면증 환자에게서 이러한 현상이 밤새 이어지는 배경으로 지목되는 것이 과각성이다. 과각성이란 잠들어 있는 동안에도 뇌의 각성 수준이 충분히 내려가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불면증 환자의 뇌파를 보면, 잠든 뒤에도 깨어 있을 때 나타나는 빠른 파형인 베타파가 남아 있다고 알려져 있다. 베타파가 강하게 나타나는 사람일수록 잠든 시간을 실제보다 짧게 기억하고, 잠들기까지 걸린 시간을 실제보다 길게 기억했다고 보고되었다.
뇌가 밤새 각성에 가까운 상태로 있으면, 다음 날 아침, 지난밤을 떠올릴 때 잠들어 있던 기억보다는 깨어 있던 기억이 더 많이 남게 된다.
미국수면의학회가 펴내는 국제 수면장애 분류(ICSD)라는 진단 분류집이 있다. 예전 판에서는 A씨 같은 경우를 '역설적 불면'이라는 별도의 진단명으로 따로 분류했었지만, 가장 최신 판에서는 삭제되었다. 따로 분류할 만한 근거가 충분히 모이지 않았다는 판단에서이기도 하고, '환자가 느낀 수면시간'과 '검사로 측정한 수면시간'의 차이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불면증 환자 전반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진단 분류가 사라졌다는 것은, A씨 같은 환자가 특이한 일부 케이스가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검사가 틀린 것도, A씨가 없는 말을 지어낸 것도 아니다.
'역설적 불면'을 겪는 사람들에게도 불면증 인지행동치료가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
먼저 잠에 대해 배우는 과정이 있다. 수면일기와 검사 결과를 나란히 놓고, 본인이 기억하는 밤과 기록에 남은 밤이 어디에서 갈라지는지 함께 짚어 나간다.
침대에 머무는 시간을 줄이는 것도 중요하다. 자신이 실제보다 적게 잤다고 믿으면 부족한 잠을 채우려고 더 오래 누워 있게 되는데, 누워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뒤척이는 시간도 함께 길어지고 잠은 오히려 더 얕아진다. 반대로 누워 있는 시간을 줄이면 잠이 토막 나지 않고 통으로 이어지면서 깊어진다고 알려져 있다. 잠이 깊어지면 잤다는 느낌도 함께 살아난다.
한의학에서는 잠들지 못하는 것을 불매(不寐)라 한다. 그중에서도 A씨처럼 지쳐 있으면서 잠들지 못하는 경우를 설명하는 용어가 '허번(虛煩)'이다.
『금궤요략』 「혈비허로병맥증병치(血痺虛勞病脈證幷治)」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허로로 허번하여 잠들지 못하면 산조인탕으로 다스린다."(虛勞虛煩不得眠, 酸棗仁湯主之)
'허번'은 몸이 지쳐 있는데도 속이 들뜨고 답답해서 가라앉지 않는 상태를 가리킨다. 허(虛)는 기운이나 진액이 모자란 것을 말한다. 번(煩)은 속에서 열이 오르며 안절부절못하는 것을 말한다. 몸에서 열을 식혀줄 재료가 모자라면 오르는 열을 눌러줄 힘도 함께 모자라진다. 그래서, 수면부족으로 회복이 되지 않고 소진되어 낮 동안에는 지쳐 있다가도 밤이 되면 오히려 머리가 또렷해지는 상태가 된다.
'허번'에 대한 설명을 듣고 A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낮에는 눈이 감기는데 침대에 누우면 정신이 말짱해진다고, 그게 제일 이상했다고 했다.
잠들지 못하는 이유는 여럿이고, '허번'은 그중 하나다. 한의학에서는 환자의 증상이 대체로 어떤 유형에 해당하는지 확인하고, 거기에 더해 그 사람만의 특성에 따라 지금 몸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한의학의 관점으로 파악한다. 이 과정을 변증(辨證)이라고 한다. 그래서 불면증이라고 해서 모두에게 적용 가능한 처방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대한한방신경정신과학회에서 나온 불면장애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을 보면, 어지럽고 귀가 울리며 얼굴빛이 창백하면 간혈휴허(肝血虧虛)로 보고 산조인탕가감을 제시한다. 잘 놀라고 악몽이 잦으며 입이 쓰고 가래가 많으면 심담허겁(心膽虛怯)으로 보고 온담탕가감을 제시한다. 두 처방 모두 '허번'으로 잠들지 못하는 경우를 다룬다.
다만 지침에 적힌 것은 유형별 권고까지다. 같은 간혈휴허로 보더라도 사람마다 소화 상태가 다르고, 낮에 지치는 정도가 다르고, 함께 앓고 있는 병이 다르다. 그래서 기본이 되는 처방을 그대로 쓰지 않고 약재를 더하거나 빼며, 용량과 복용 기간도 조정한다. 처방 이름 뒤에 붙는 '가감(加減)'이 그런 뜻이다. 몇 주 지켜본 뒤 반응을 보고 처방 자체를 바꾸기도 한다.
하룻밤 잠을 설치고 나서 실제로 잔 시간보다 적게 잤다고 느끼는 일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것만으로 병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정신장애 진단 기준(DSM-5)에서는 잠들기 어렵거나 자다가 자주 깨는 일이 일주일에 사흘 이상, 석 달 넘게 이어지고, 그로 인해 낮 생활에 지장이 생길 때 불면장애로 본다. 낮 생활에 지장이 생긴다는 것은 일이나 공부에 집중이 되지 않고, 실수가 늘고, 사람 만나는 일이 버거워지는 상태를 말한다.
잠을 못 잔다고 느끼는 배경에 다른 병이 숨어 있을 때도 있다. 다음 세 가지에 해당하는 것이 있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코골이와 무호흡을 묻는 첫 번째 항목이 특히 중요하다. 수면무호흡이 있으면 밤새 잠이 여러 번 끊긴다. 그래서 검사에서 총 수면시간이 정상으로 나오더라도 실제로는 푹 잔 것이 아닐 수 있다.
2주 뒤 A씨가 수면일기를 가지고 다시 오셨다. 잠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했다. 다만 새벽에 깼을 때 시계를 확인하지 않게 되었고, 몇 시간을 잤는지 따져보는 일도 줄었다고 했다.
검사에서 정상으로 나왔다고 해서 A씨가 겪는 괴로움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밤새 뇌의 각성이 충분히 가라앉지 않으면, 실제로 잠들어 있었더라도 깨어 있었다고 기억하게 된다. 그래서 진료에서는 지난밤에 몇 시간을 잤는지보다, 밤이 되어도 뇌가 가라앉지 않는 이유를 먼저 찾는다. 불면증 인지행동치료도, 한의 치료도 그 이유를 다룬다.
읽으시면서 짚이는 데가 있으시다면, 한방신경정신과 진료가 가능한 가까운 한의원을 방문하셔서 편하게 이야기를 꺼내 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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