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박장애
강박증 환자가 확인을 그만두게 되는 것은 불안이 사라져서가 아니라, 확인하지 않아도 두려운 일이 벌어지지 않더라는 경험이 쌓인 뒤이다. 800년 전 의서『유문사친』에 소개된 경자평지(驚者平之)가 이미 같은 의미의 치료로서 존재한다.
"오늘은 가스 밸브를 잠그고 나서 스물 세 번을 확인했어요. 그러고도 엘리베이터에서 다시 내려 집으로 올라갔습니다."
올해 나이 서른셋인 B씨는, 집을 나설 때 가스 밸브를 되풀이해서 확인한 지 4년쯤 되었고, 정신건강의학과에서 강박장애 진단을 받아 항우울제를 복용 중이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잠이 얕고, 작은 소리에도 잘 놀란다고 했다. 확인을 참고 그냥 나와본 날도 있었는데, 회사에 도착할 때까지 집에 불이 났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아 결국 반차를 내고 돌아왔다고 한다.
오늘 글에서 살펴보려는 주제는 800년쯤 전 의서에 나오는 환자 이야기다. 금나라 시대 의원 장자화(張子和)가 남긴 『유문사친』에 실려 있다.
위덕신이라는 사람의 부인이 여관 이층에서 자다가 도적을 만났다. 도적들이 집에 불을 질렀고, 부인은 놀라 침상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그날 이후로 무슨 소리든 들리기만 하면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집안 사람들은 발끝으로 걸어 다녔고, 소리가 날까 봐 물건 하나 함부로 내려놓지 못했다. 1년이 넘도록 낫지 않았다. 여러 의원이 심장의 병으로 보고 인삼, 진주, 정지환(定志丸) 같은 안정시키는 약을 썼지만 소용이 없었다.
장자화는 약을 쓰지 않았다. 시녀 두 사람에게 부인의 양손을 잡게 하고 높은 의자에 앉힌 다음, 눈앞에 작은 상을 하나 놓았다. 그러고는 "이것을 보십시오" 하고 나무 막대기로 상을 세게 내리쳤다. 부인은 크게 놀랐다. 장자화가 물었다. "나무로 상을 쳤을 뿐인데 무엇이 그리 놀랍습니까?" 장자화는 부인이 진정되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한 번 상을 내리 쳤다. 두 번째에는 놀라는 정도가 덜했다. 조금 뒤에 연달아 서너 번을 더 쳤고, 이어서 지팡이로 문을 두드렸다. 사람을 시켜 부인 등 뒤의 창을 긁게 하기도 했다. 그러자 부인이 차츰 진정되더니 웃으며 물었다. "이게 대체 무슨 치료법입니까?"
장자화는 『황제내경』 소문 「지진요대론」의 네 글자로 답했다. 경자평지(驚者平之)다. 잘 놀라는 사람은 그 일이 예삿일이 되게 해주면 된다는 뜻이다. 평(平)이란 늘 겪어서 대수롭지 않게 된 상태를 말한다. 놀라게 하던 그 소리가 늘 듣는 소리가 되고 나면 더 이상 놀라지 않는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날 밤에도 사람을 시켜 저녁부터 새벽까지 문과 창을 두드리게 했다. 하루 이틀이 지나자 부인은 천둥소리를 들어도 놀라지 않았다.
이 부인은 사실 강박증 환자가 아니다. 큰 사고를 겪은 뒤 소리에 지나치게 놀라게 된 경우이니, 오늘날로 치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가깝다. 그런데도 이 사례를 강박증 이야기에 꺼내는 이유가 있다. 장자화가 쓴 치료 방법의 구조가, 오늘날 강박증 치료에서 쓰는 방법과 같기 때문이다.
한의학에서는 장자화가 쓴 이 방법을 경자평지요법(驚者平之療法)이라 부른다. 이정변기요법, 지언고론요법, 오지상승요법과 함께 한방정신요법의 한 갈래로 분류한다. 국내 한방신경정신과의 치료 사례 기록을 모아 정리한 자료를 보면, 이 네 가지 요법은 옛 문헌 속 이야기로만 남아 있지 않고 지금도 진료에서 쓰이고 있다. 서양의학에도 그 원리와 구조가 같은 치료가 있다. 강박장애의 대표적인 행동치료인 노출반응방지(exposure and response prevention)다. 불안과 두려움, 찝찝함을 일으키는 상황을 약한 것부터 순서대로 겪게 한다. 그러면서 평소에 하던 확인이나 씻기 같은 행동은 하지 않게 한다.
그런데, 두려운 자극을 일부러 겪게 하는 이 치료가 왜 효과가 있는지는, 장자화가 든 이유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늘 듣는 소리가 되면 놀라지 않는다"는 말은, 같은 자극을 여러 번 겪으면 반응이 저절로 줄어든다는 뜻이다. 오랫동안 노출치료의 원리도 그렇게 설명되어 왔다.
하지만, 노출치료에 대한 연구들이 누적되면서, 좀 더 많은 부분이 밝혀졌다.
한 연구에서, 강박증에 대한 노출치료 기간이 끝나고 몇 달 후, 치료 기간 중 많은 개선이 있었던 집단과 그렇지 않았던 집단을 대상으로 증상 개선 정도를 다시 한 번 확인해 보았을 때, 뜻밖의 결과가 나타났다. 두 집단의 증상 정도에 별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치료 기간 중의 증상 감소 폭이 정작 치료 효과의 유지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치료 기간 중의 증상 감소 폭보다 치료 결과와 더 관련이 컸던 요인은 사실 따로 있었다. 강박증 환자들에게는 "A를 하면, 혹은 A를 하지 않으면 B라는 나쁜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식으로 예상하는 신념이 있다. 그 신념이 실제 현실에서는 빗나간다는 사실, 곧 예상했던 나쁜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치료 기간 중에 얼마나 크게 겪었는지가 장기간의 치료 효과 유지에 중요하게 영향을 주었다.
가스 밸브를 스물 세 번 확인하시는 분에게 "불안이 가라앉을 때까지 확인하지 말고 버텨보세요"라고 말했다고 하자. 이 말을 들은 환자분은 자기 불안이 내려가는지를 계속 살피게 된다. 그런데 불안은 좀처럼 내려가지 않는다. 결국 버티기에 실패했다고 느끼고, 다음번에는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된다.
같은 분에게 이렇게 말해볼 수도 있다. "불안이 얼마나 심한지는 상관없습니다. 매일 가스 밸브를 단 한 번만 잠그고 나가신 다음, 저녁에 돌아와서 집이 어떤 지 확인하고 기록해오세요." 이 환자분에게는 "한 번만 잠그고 나가면 불이 난다 혹은 사고가 날지도 모른다"는 신념이 있다. 그 예상이 정말 맞는지 알아보는 것이 이 훈련의 목표이다. 저녁에 돌아와 집이 그대로인 것을 눈으로 보는 날이 여러 번 쌓이면, 내가 그동안 생각해왔던 신념 자체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강박증에서 처럼 되풀이해서 확인하는 행동이 왜 도움이 되지 않는지를 보여준 실험이 있다. 참여한 사람들에게 가스레인지를 본뜬 장치를 주고, 불을 껐다가 제대로 꺼졌는지 살펴보기를 스무 번 되풀이하게 했다. 그러고 나서 물어보니, 방금 살펴본 장면(불이 꺼졌는지 켜져있는지)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고 답했다. 자기 기억을 믿는 정도도 처음보다 낮아져 있었다.
한 번 더 확인하면 마음이 놓일 것 같지만, 실제로는 한 번 더 확인할 때마다 방금 확인한 기억이 조금씩 흐려진다. 기억이 흐려지면 다시 확인하고 싶어진다. 스물세 번이라는 횟수는 그렇게 만들어진다.
한의학에서 강박장애는 심계(心悸, 가슴이 두근거리는 병)와 울증(鬱症, 기가 뭉쳐서 생기는 병)의 범주에서 다룬다. 강박장애로 한의 치료를 받으신 분들의 진료 기록을 정리해 국내에서 발표한 연구가 있다. 한방신경정신과 전문의가 변증한 결과, 전원이 심담허겁(心膽虛怯)에 해당했다고 한다. 심담허겁은 기(氣)가 뭉쳐 잘 돌지 못하는 상태에서 담음(痰飮)이라는 노폐물이 생기고, 그 담음이 한의학에서 말하는 심(心)과 담(膽)의 기능을 방해해 나타나는 상태다. 겉으로는 잘 놀라고, 겁이 많아지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잠이 얕아지는 모습으로 드러난다. B씨가 처음 오셨을 때 말씀하신 몸의 증상들이 그대로 여기에 해당한다.
치료는 온담탕(溫膽湯) 계열의 한약과 침, 그리고 앞서 말한 한방정신요법을 함께 쓰는 방식이었다. 참여하신 분들은 치료 기간 내내 정신과 양약을 복용하지 않았다. 8주 뒤에 강박 증상 점수가 뚜렷하게 낮아졌고, 12주까지 이어간 분들은 낮아진 폭이 더 컸다.
여기서 눈여겨볼 점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낮아진 수치는 강박 증상 점수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울과 불안, 불안 때문에 생기는 신체 증상척도까지 점수가 함께 내려갔다. 강박증으로 힘들어하시는 분들은 우울과 불안, 불면을 같이 앓는 경우가 많다. 온담탕 계열의 처방은 강박 증상 하나만 겨냥하지 않는다. 잘 놀라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잠이 얕은 몸의 상태를 함께 다룬다. 증상이 하나 늘 때마다 약을 하나씩 더 얹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치료 과정에서 강점이 된다.
다른 하나는, 이 결과가 양약을 복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강박장애의 표준 약물치료인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차단제(SSRI)는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대개 8주에서 12주가 걸리고, 우울증에 쓸 때보다 높은 용량이 필요하다. 앞의 한의 치료 연구에서 변화가 뚜렷해진 시점도 8주와 12주였다. 참여 인원이 적고 비교할 대조군이 없는 연구이므로 두 치료를 나란히 놓고 비교하기는 어렵다. 다만, 한의약 치료가 양약이 맡고 있는 역할을 대신할 수 있을것이라는 가설을 세우기는 충분하다.
물론, 이 연구 하나로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다만, 침 치료에 대해서는 국제적으로도 근거가 쌓이고 있다. 최근에 발표된 메타분석은 강박장애 환자를 대상으로 한 무작위 대조 시험 23편, 1,713명분의 자료를 모은 것이다. 침 치료를 받은 쪽이 0점에서 40점까지 매기는 강박 증상 척도에서 평균 3.14점 더 낮아졌고, 이상반응을 보고한 사람은 약물만 쓴 쪽보다 적었다. 연구마다 편차가 커서 이 논문의 저자들도 확정적인 결론을 내리기는 이르다고 하였는데, 침을 약물치료에 더했을 때 강박 증상이 더 줄어든다는 방향만큼은 여러 연구에서 일관되게 나타났다.
실제로 한의원에 오시는 분들 중 상당수는 이미 양약을 복용하고 계신다. 그런 경우에는 한의 치료와 양약을 함께 가는 것이 기본이 된다. 하지만, 아직 약물치료를 시작하지 않으셨거나 부작용 때문에 복용을 이어가기 어려우셨던 분들에게는, 한의 치료를 먼저 해보는 것도 선택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한방정신요법이 치료 과정 중 다른 치료들과 함께 시행된다는 점을 짚어두고 싶다. 앞의 연구에서도 경자평지요법을 비롯한 한방정신요법이 침 치료 앞뒤로 매주 시행되었다. 한약을 처방하고 침을 놓으면서 환자분의 이야기를 듣고 설명하는 일이 같은 진료 시간 안에 이어진다는 뜻이다. 강박증처럼 몸이 힘든 것과 마음이 힘듦이 같이 나타나는 병에서는, 이렇게 한자리에서 이어지는 진료가 유리하다.
『유문사친』의 이야기에서 정작 중요한 대목은 낮에 상을 두드린 장면이 아니라 그날 밤이다. 장자화는 사람을 시켜 저녁부터 새벽까지 밤새 문과 창을 두드리게 했다. 낮에 몇 번 놀라게 해보는 것으로 끝내지 않았다.
강박증 치료도 그렇다. 확인하지 않고 한 번 집을 나서보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확인하지 않고 나선 아침이 여러 번 쌓여야 한다. 그 아침마다 불안은 여전히 남아있을 것이다. 불안이 사라져서 확인을 그만두게 되는 것이 아니라, 확인하지 않은 아침이 여러 번 쌓인 뒤에야 불안이 줄어들고 확인을 그만둘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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