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

ADHD는 게으른 게 아니라, 시동이 안 걸리는 것

ADHD

서현욱 원장작성해아림한의원 신촌점 대표원장 서현욱한방신경정신과 전문의|게시일 2026.07.29
요약

ADHD 아이들이 과제를 시작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이유에 대해 설명합니다.

"게임할 땐 두 시간도 앉아 있어요. 근데 숙제만 펴면 5분을 못 버텨요."


진료실을 방문한 초등학교 3학년 남자아이의 어머니가 자리에 앉자마자 꺼낸 말이었다. 억울함과 확신이 반씩 섞인 목소리였다. 이런 경우, 어머니의 결론은 대개 정해져 있다.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라고. 아이는 어머니 옆에서 운동화 앞코로 바닥을 문지르며 그 말을 끝까지 듣고 있었다.


어머니의 관찰 자체는 정확하다. 어머니가 본 것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다만 그 사실에서 끌어낸 결론이 한 칸 어긋나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한 칸의 어긋남이, 앞으로 몇 년간 이 집에서 벌어질 일들을 거의 다 결정한다.


하기 싫은 것과, 시작이 안 되는 것


게으름은 태도의 문제다. 해야 할 일의 가치를 낮게 매기고, 그래서 하지 않기로 선택하는 것. 여기엔 '선택'이라는 단계가 반드시 들어간다.


그런데 진료실에서 만나는 아이들이 걸려 넘어지는 지점은 대개 그 앞단이다. 해야 한다는 걸 알고, 안 하면 어떻게 되는지도 알고, 사실은 하고 싶기까지 한데, 첫 동작이 나오지 않는다. 문제집을 펴는 것, 연필을 쥐는 것, 첫 문항의 숫자를 읽는 것. 그 최초의 1분이 통과되지 않는다. 그 상태로 30분이 지나면 외부인이 보기에 그것은 완벽하게 게으름처럼 보인다. 겉모습이 같기 때문이다.


행동을 개시하는 일은 저절로 되는 게 아니다. 뇌 안에서 별도의 공정이 돌아간다. 지금 상황을 붙잡아두고, 해야 할 순서를 세우고, 다른 자극을 눌러두고, 몸에 신호를 보내는 일련의 과정. 이걸 묶어서 실행기능(executive function)이라고 부른다. 이 공정이 헐거우면, 의지가 아무리 멀쩡해도 결과물은 나오지 않는다.


왜 시동이 안 걸리나?


여기엔 여러가지 가설들이 겹쳐 있다.


첫째, 실행기능 자체가 또래보다 약하다.


2005년에 발표된 메타분석 연구에서는 83개 연구, ADHD군 3,734명과 대조군 2,969명의 데이터를 모아 분석했다. ADHD 환자들은 반응억제, 각성 유지, 작업기억, 계획 능력에서 일관되게 차이가 나타났고, 효과크기는 대체로 0.46~0.69의 중등도 범위로 나타났다. 분명한 차이지만, 압도적인 차이는 아니다.


여기서 보호자들이 자주 혼란을 겪는 지점을 짚고 넘어가야겠다. 이 연구의 결론 중 하나는 실행기능 결함이 ADHD의 필요조건도 충분조건도 아니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검사상 실행기능이 정상 범위로 나오는 ADHD 아이들이 꽤 있다. 종합심리검사 결과지를 받아 들고 "여기 다 정상이라고 나왔는데 왜 ADHD인가요"라고 묻는 부모를 자주 만난다. 검사가 틀린 것도, 진단이 틀린 것도 아니다. 30분짜리 검사실 과제와, 아무도 안 보는 방에서 두 시간을 혼자 버티는 일은 요구하는 능력이 다르다.


둘째, 보상 회로가 다르게 작동한다.


다른 한 연구에서는 ADHD를 실행기능 하나로만 설명하는 데 반대하며 이중경로 모델을 제시했다. 억제 능력의 문제와는 별개로, '지연혐오(delay aversion)'라는 축이 있다는 것이다. 기다림 자체가 불쾌한 정서를 일으키고, 아이의 행동은 그 불쾌를 벗어나려는 기능적 반응이라는 설명이다.


2009년 JAMA에는 약물을 복용하지 않는 성인 ADHD 53명과 대조군 44명을 대상으로 한 뇌영상 연구가 실렸다. 보상과 관련된 영역에서 도파민 지표가 유의하게 낮았고, 그 저하 정도는 부주의 증상의 심각도와 상관을 보였다. 성인 대상 연구라 아이에게 그대로 옮기는 데는 신중해야 하지만, 충분히 시사하는 점이 보인다.


이 이야기를 어머니의 첫 문장 위에 겹쳐보자. 게임은 보상이 초 단위로 도착한다. 숙제의 보상은 며칠 뒤 채점된 종이 한 장, 혹은 몇 년 뒤의 막연한 무엇이다. 보상이 멀수록 그 가치를 가파르게 깎아내리는 뇌에게, 이 둘은 애초에 같은 종류의 일이 아니다. 두 시간 앉아 있는 아이와 5분을 못 버티는 아이는 같은 아이가 맞다. 다만 그 아이의 회로가 두 과제를 전혀 다른 무게로 계산하고 있을 뿐이다.


셋째, 고장이 아니라 시차다.


2007년에 보고된 다른 연구를 살펴본다. 뇌의 가장 겉면(대뇌피질)은 어릴 때 점점 두꺼워지다가, 어느 나이를 지나면 도로 얇아지기 시작한다. 얇아지는 건 나빠지는 게 아니다. 안 쓰는 연결을 정리하는 과정이라, 방향이 꺾이는 그 지점이 오히려 다 자랐다는 표시다. 연구진들은 아이 446명의 뇌를 여러 해 동안 찍어 이 나이를 재봤다. 일반 아이는 7.5세, ADHD 아이는 10.5세였다. 3년이 늦다. 그중에서도 주의력과 계획을 맡는 앞이마 부분이 가장 늦었다. 대신 자라는 순서는 똑같았다. 망가진 게 아니라 늦은 것이다. 열 살 아이 몸에 일곱 살짜리 브레이크가 달려 있는 셈이다.


이를 임상 현장의 어림값으로 ADHD 아동의 자기조절 연령은 실제 나이보다 대략 30% 뒤에 있다고 표현한다. 정밀한 측정치라기보다 감을 잡기 위한 비유에 가깝지만, 부모에게는 이 비유가 실질적으로 유용하다. 열 살 아이에게 우리는 열 살에게 하는 요구를 한다. 그 아이의 자기조절 능력이 일곱 살 언저리에 있다면, 아이에게 요구되는 수준은 아이가 감당할 수 있는 것에 비해 매일 조금씩 과하다. 아이도 부모도 매일 실패한다.


매일 실패하는 집에서 벌어지는 일


"제가 옆에 붙어 있으면 해요. 딱 자리 비우면 그때부터 딴짓이에요."


이것도 자주 듣는 말이다. 그리고 이 말은 부모가 이미 아이의 외부 실행기능 노릇을 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 역할이 사람을 소진시킨다는 것이다. 하루 이틀이면 몰라도 3년, 5년이면 아이와 부모의 목소리 분위기가 모두 달라진다.


ADHD 아동 388명과 대조군 127명을 7세부터 13세까지 추적한 연구가 있다. 부모의 표현정서를 5분 발화 표본으로 측정해 비판적 태도를 코딩했는데, 부모의 비판이 높은 수준으로 지속된 집단에서는 일반적으로 관찰되는 증상 감소 곡선이 나타나지 않았다. 적대적 반항 증상이 악화되는 궤적과의 연관은 더 뚜렷했다.


이 대목을 부모 탓으로 읽지 않으셨으면 한다. 인과의 화살은 한 방향이 아니다. 통제하기 어려운 아이를 오래 키우면 비판적인 말이 늘어나는 것이 자연스럽고, 그 말이 다시 아이의 반항을 키우고, 그것이 다시 부모를 지치게 한다. 누구의 잘못이라기보다 두 사람이 함께 갇힌 회로다. 다행히 회로는 어느 지점에서든 끊을 수 있다.


의지를 늘리려고 하지 말고, 진입장벽을 낮춘다


"책상엔 앉아 있어요. 근데 두 시간 지나서 보면 문제집이 그대로예요."


이 아이에게 더 필요한 건 각오가 아니다. 시작 지점에서의 마찰을 줄이는 일이다. 몇 가지 원칙이 있다.


과제를 1분 단위로 쪼갠다. "수학 숙제 해"는 시작할 수 없는 명령이다. "3번 문제 하나만 풀고 와"는 시작할 수 있다. 실행기능이 감당해야 할 계획의 양을 부모가 미리 덜어주는 것이다. 시작만 하면 관성이 붙는 아이가 많다.


시작 신호를 사람에게서 사물로 옮긴다. 잔소리를 줄이라는 말은 공허하다. 대신 타이머, 알람, 체크리스트처럼 감정이 실리지 않는 매개가 그 역할을 넘겨받게 한다. 아이가 저항할 대상이 부모에서 기계로 바뀌면 관계에 쌓이는 데미지가 줄어든다.


보상을 일의 가장 뒤가 아니라 오히려 과제의 앞과 중간부에 배치한다. 멀리 있는 보상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는 회로를 가지고 있다면, 그 보상을 아이의 보상회로가 닿을 수 있는 거리 안으로 가져오는 편이 합리적이다. 다 끝내면 주는 상보다, 한 문항마다 표시되는 작은 보상이 낫다는 이야기다.


시간을 눈에 보이게 만든다. 시간 감각의 문제가 크다면, 숫자로 표기되는 일반적인 시계보다 남은 시간이 면적으로 줄어드는 시각적 타이머가 도움이 된다. 추상적인 '30분'을 감각적인 '줄어드는 빨간 부채꼴'로 바꿔주는 장치다.


이 네 가지는 각각 앞에서 이야기한 기전을 하나씩 겨냥한다. 1) 계획 부담, 2) 개시 신호, 3) 보상 거리, 4) 시간 감각이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한의학에서는 어떻게 볼까?


한의학에서는 이런 아이를 볼 때 '의욕이 없다'는 식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한의학에는 심주신명(心主神明), 비주사(脾主思)라는 말이 있다, 사고와 집중은 심(心)과 비(脾)의 기능에 얹혀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한의학에서 심비양허(心脾兩虛)로 표현되는 아이의 산만함은 '마음이 게으르다' 대신에, '신(神)이 자리를 잡지 못한 상태'로 번역된다 . 힘이 남아돌아 못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앉아 있을 힘이 모자란 상태라는 것이다.


물론 모든 아이들이 같은 유형으로 분류되지는 아니다. 예를 들어, 얼굴이 붉고 성마르며 밤에 잠들기 어려운 증상이 함께 나타나는 아이는 간(肝) 쪽에서, 또래보다 발달 전반이 느린 아이는 신(腎) 쪽에서 접근하는 것이 한의학적으로 타당하다. 소아 ADHD에 대한 한약 치료의 임상 근거는, 임상에서 실제로 발휘되는 그 효과와 별개로 아직 더 쌓여야 할 단계이고, 이 글에서 효과를 단정할 생각은 없다. 다만, 아이의 상태는 결코 성품의 문제로 해석되어서는 안된다.


몇 달 뒤


넉 달쯤 지나 같은 모자가 다시 왔다. 아이는 여전히 두 시간짜리 게임과 5분짜리 숙제 사이에서 살고 있었다. 극적으로 달라진 건 없었다.


다만 어머니의 첫마디는 바뀌어 있었다.


"얘가 시작만 하면 하거든요. 그 시작을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아직 잘 모르겠어요."


같은 아이를 두고 나온 말인데, 이 문장에는 아이를 탓하는 대목이 보이지 않는다. 무엇을 도와야 하는지도 정확히 지목하고 있다. 진단명이나 약물 복용 이야기를 하기 전에, 아이를 바라보는 시점의 이동이 먼저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부터는 부모와 아이가 같은 편에 서기 때문이다.


Reference


Willcutt EG, Doyle AE, Nigg JT, Faraone SV, Pennington BF. Validity of the executive function theory of attention-deficit/hyperactivity disorder: a meta-analytic review. Biological Psychiatry. 2005;57(11):1336-1346.

Sonuga-Barke EJS. Psychological heterogeneity in AD/HD—a dual pathway model of behaviour and cognition. Behavioural Brain Research. 2002;130(1-2):29-36.

Sonuga-Barke EJS. The dual pathway model of AD/HD: an elaboration of neuro-developmental characteristics. Neuroscience & Biobehavioral Reviews. 2003;27(7):593-604.

Volkow ND, Wang GJ, Kollins SH, et al. Evaluating dopamine reward pathway in ADHD: clinical implications. JAMA. 2009;302(10):1084-1091.

Volkow ND, Wang GJ, Newcorn JH, et al. Motivation deficit in ADHD is associated with dysfunction of the dopamine reward pathway. Molecular Psychiatry. 2011;16(11):1147-1154.

Shaw P, Eckstrand K, Sharp W, et al. Attention-deficit/hyperactivity disorder is characterized by a delay in cortical maturation. PNAS. 2007;104(49):19649-19654.

Musser ED, Karalunas SL, Dieckmann N, Peris TS, Nigg JT. Attention-deficit/hyperactivity disorder developmental trajectories related to parental expressed emotion. Journal of Abnormal Psychology. 2016;125(2):182-195.

Barkley RA. The Important Role of Executive Functioning and Self-Regulation in ADHD. russellbarkley.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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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모든 내용은 해아림한의원 신촌점 대표원장 한방신경정신과 전문의 서현욱 원장이 직접작성하였습니다.